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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Note

[잡담] 머리카락을 기부했다(feat. 인생 첫 숏컷)

by Mandy✨ 2021. 10. 9.

사진을 올릴 순 없으니 제페토를 우려먹는다

 작년 초, 그러니까 까마득한 설명을 붙이자면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 몰랐던 2020년 3월. 나는 그때 봄도 되고 하니 더워서 열불이 나기 시작했다. 퇴근길, 일교차 때문에 입은 얇은 모직코트까지 더워 미치겠는 상황이라 머리를 싹둑 자르고 집에 돌아왔다. 당시 갈비뼈까지 오던 긴 파마+염색 손상 부분을 과감히 잘라 어깨선에 닿을 정도의 기장으로 줄였다. 머리 감는 시간의 단축은 물론이고 상한 머리에 눈물의 트리트먼트 강화쇼를 하느라 사용한 시간과 비용까지 아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첫 회사를 그만두면서 약 반 년의 백수 기간이 시작되었다. 조기취업 성공자였기 때문에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아무런 타이틀이 없는 '백수'의 시간은 누텔라 잼 가득 바른 채운 페레로로쉐처럼 달콤하고 행복했지만, 어딘가 불안함이 느껴졌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토록 원했던 언론 관련 공부를 하고 싶어 방통대에 편입하게 되었다. 새로운 학위 과정도 시작하고 미뤄만 둔 운전면허도 따 마냥 낭비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코로나 19 때문에 집에만 있었으니 머리카락에 돈과 시간은 들이지 않았다. 그 이후에 운 좋게 현재 다니는 회사에 들어왔지만, 역시 재택근무를 계속 하다보니 머리카락의 미용을 위한 투자는 거의 없었다. 얼떨결에 염색, 파마 하나 없는 천연의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성인이 된 이후 약 n년 만에 조우한 것이다.

 집에서는 매일 곱창밴드를 사용해 똥머리를 강하게 묶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있었다. 미팅과 회의가 있을 때에만 단정히 포니테일, 혹은 깔끔하게 빗어서 푸르는 쪽을 선택했다. 슬슬 이것도 귀찮고 무거워져서 누가 내 머리에 큰 똥을 쌌는지의 크기까지 되고 있었다. 다시 단발을 해볼까 생각하다, 주변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 나도 해볼까... 생각해보니 염색, 파마 한 번도 안 해서 깨끗하고 튼튼한 머리카락이 준비되어 있다. 조금 더 기르면, 어머나운동본부에서 기준으로 정한 25cm의 길이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나운동본부

어린 암환자들을 위한 머리카락 나눔활동

www.givehair.net

 

 알고보니, 어머나운동본부에 머리카락을 기증할 때 탈색, 파마 등을 한 머리카락도 기부가 가능했다고 한다. 나는 손상이 안 된 상태긴 했지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특히 좋겠다. 머리카락 기부에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어머나운동본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드디어 머리카락을 자르는 날이 되었다. 룰루랄라 신나게 갔다.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운 좋게도 내가 이동할 때에는 기적 같이 비가 멎어 비교적 쾌적하게 다녀왔다. 매우 길게 잘라냈음에도, 다시 다듬고 정리하면서도 왕창 잘라냈다. 저 길고 많은 양의 머리카락이 내 머리에 붙어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미용사 분과 하하호호 웃으며 수다를 떨다가 어느덧 가벼워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공 어찌 머리카락만 오셨소

 

 머리숱도 많아서 네 갈래로 나눈 뒤에 잘랐다. 그렇게 자른 머리카락은 당일에 바로 택배로 보냈다. 다행히 배송도 잘 되었고, 미리 회원가입을 해둬서 그런지 발급이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졌다.

그렇게 기부증서도 발급 받았다.

 

 중간에 머리카락을 바로 자르고 싶은 충동도 매우 컸다. 혹시라도 너무 짧은 머리가 이상하면 어떨지 고민했지만, 새로운 스타일을 도전하니 꽤 마음에 들고 만족스럽다. 언제 또 이렇게 손상 안 된 채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보겠나. 거창하지도, 굉장하지도 않은 기부였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다. 부디 내 머리카락이 좋은 곳에 잘 쓰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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