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꿈이 꽤 고정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름 인문, 사회과학 계통으로 10년 가까이, 오래 유지된 편이다. 유적지 현장을 쏘다니며 미지의 문명을 발굴하는 사학자에서 시작된 꿈은 세상 모든 불의에 맞서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사회부 기자를 꿈꾸던 10대 시절로 설명할 수 있겠다. (사상빨간사춘기) 당시의 내게 꿈이라는 것은 직업인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사상과 신념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사람이 되는 지가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는 10대 시절의 꿈과 다르게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일단 학교부터 컴공을 갔으니 사학자를 꿈꾸던 초-중학생에게는 충격이 클 것이다. 수포자 아니셨나요?라고 물어봐도 할 말이 없다. 너희의 미래가 그렇게 되었다고 전해라. 그래도 사회부 기자를 꿈꾸는 고등학생은 컴퓨터에 재미를 슬슬 느끼며 '혹시라도...'라는 제 2의 플랜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을 했을 지라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워낙 사주팔자 같은 걸 안 믿는 단호한 성격 탓에 이런 미래를 미리 알고 있었어도 "웃기지 마요!ㅜㅠ" 하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마이웨이를 걸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TMI: 어머니의 예전 직장 동료 중에 '그런 기운'이 있는 분이 계셨다. 그분이 내가 커서 컴퓨터 관련된 일을 할 거라고, 지나가는 말로 하셨다고 한다. 교회 다니시는 어머니는 에휴, 설마... 라고 했다는데 설마가 사람 잡아버렸다.) 그리고 알았으면 로또 번호나 알려달라고 했겠지...
그렇다면 20대의 나는 무슨 꿈을 꾸는 걸까? 일단 직업적인 목표를 제외한다면, 나는 내 의견을 명확히 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진심을 다해 말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고 좋아 보인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바로 잡고 내게 손해가 될 지라도 정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은 여러 상황에 따라 힘들 수 있다. 적어도 나와 타인에게 피해를 안 끼치는 방향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거짓을 말해야 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을 아예 나쁘다고도 할 수는 없겠다.)
지금에야 새롭게 정의한 신념일지 몰라도, 그것은 내가 계속 자라온 뿌리에서 기인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사람들의 역사와 전해지는 미지의 과거를 파헤치며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을 원했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현재의 내 모습이 그 두 가지에 완벽히 맞지는 않지만, 내 위치에서 아예 못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결국에는 지금보다는 좀 더 발전하고 싶다는 말을 돌려서 하고 말았다. 학위 과정 중간고사 과제를 모두 마치고 쓴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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